우리는 한 번도 다수였던 적이 없다. (마태복음 7장 12-15)
사순절 묵상 및 암송이 세번째 봉우리를 넘고 있습니다. 시편을 통한 하나님 고백과 모세를 통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 자신의 선언의 첫번 봉우리를 지나 요한복음에 나타난 우리 주님의 자신 선언과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의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신앙고백을 지나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따르는 일 즉 제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일에 대한 예수님의 지침을 산상수훈을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에 상응해서 지난 주에는 주를 따른다는 결정이 가지는 무게에 대해서 살펴 보았고 이어서 오늘은 그것의 성격과 방법을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산상수훈은 마태복음의 첫번 말씀 모음집이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삶의 특성을 잘보여주고 있다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중에서 8가지 특성을 살피며 묵상 암송하고 있는 중이고 이어서 소금과 빛으로 사는 삶 원수를 사랑하는 삶까지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외에도 산상수훈 안에는 구체적인 신앙과 삶의 실천들(금식,구제,기도…)이 구체적으로 제시됩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여러가지 구체적인 제시들의 끝과 마지막 결론 부분으로 가는 다리처럼 오늘 우리가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하는 본문이 놓여있습니다. ‘그러므로’ 로 시작되는 오늘 본문은 이전 산상수훈이 말했던 구체적인 지침들을 따른다는 것이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어떤 상황을 만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정리하자면 제자로 사는 길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선택하는 길이 쉽지 않으며 그렇기에 그런 선택을 하는 이들이 적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고 속이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고 그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한 오순절 부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교회에서 오랫동안 부흥을 꿈꾸고 노래하면서 그 근거로 보았던 성경의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속 오순절 성령강림에 이어지는 방언과 대규모의 집단 회심입니다. 꽤 오랜시간 동안 교회는 이 장면을 건강한 교회의 기준으로 교회가 가야할 모델 혹은 꿈으로 생각하며 성령님을 부흥을 주시는 능력으로 그리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부흥의 물결이 밀려 올때에 교회뿐 아니라 세상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 역시 사싧니다. 그리고 교회 역사속 부흥의 경험은 다시 오순절 사건을 우리가 꿈꿔야 하는 회복의 모습으로 여기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을 이 본문과 겹쳐서 살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펜데믹이 우리의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교회가 느끼는 위기감의 상황 속에서 이 두 장면이 어떻게 만나고 읽혀져야 하는 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더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를 주목할 것인가? 뿌리와 과정을 살필 것인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하나는 오늘 주님께서 산상수훈의 실제 적용을 말하시면서 좁은 문, 좁은 길 VS 큰 문 넓은 길을 대조시키시고 당연히 소수가 선택함과 다수가 선택함 역시 대조될시켜 말씀하신 것의 가장 핵심적인 관심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공동체로 사는 것은 절대 쉬운 결정, 당연한 결정이 아니고 제법 저항이 따르고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함에 있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주님의 관심은 따르는 자의 수가 많고 적음을 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숫자의 많고 적음은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차이나게 드러나곤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에 예수님은 5000명을 먹이시기도 하셨고 그 분이 예루살렘 입성하셨을때 그를 환호하는 이들의 함성은 결코 작은 소동이 아니없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오순절 사건 속 부흥의 모습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이거나 그것을 꿈꾸는 일이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과 완전 대립된다 말할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의 눈과 관심이 그것이 다수가 된 결과와 영향력에만 집중되어 그 길이 당연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 속 가치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주님의 오늘 가르침을 덮어 버리고 망각해 버리는 잘못으로 달려가면 안됩니다. 현상과 결과에 우리의 눈과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역설적으로 본질적으로 이 땅 가운데 낮아지신 주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어리석은 방법으로 완성하시는 복음의 본질인 뿌리를 놓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는 수시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지금 우리의 눈과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 살펴 보아야 합니다.
제자 공동체를 향한 주님의 대안
결국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17장의 두고가는 제자 공동체를 향한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 속 간구와 서로 메아리를 친다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기도 속에서 주님은 남아있는 제자 공동체가 얼마나 좁고 험한 길을 가게 될지 그 길이 얼마나 소수의 길이며 어려운 선택인지를 설명하시면서 그들을 향한 대책을 아버지께 두가지로 간구하고 계십니다. “저들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아버지와 제가 하나이듯이 저들도 서로 하나가 되게 하십시오"
사순절 주님을 믿고 따르는 공동체의 본질을 찾아 산상수훈을 꺼내 묵상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거룩하라' ‘소금과 빛이 되라’ ‘하늘 아버지 처럼 완전하라' ‘결국 사랑하라 말씀하십니다. 그 정체성을 흐리지 말아라. 그걸 지키고 포기하지 않고 사는 일이 중요하다. 라고 방향을 말씀하십니다.
두번째로 그 방향으로 살기 위해서 ‘하나되라' 말씀하십니다. 예 우리가 가는 길이 절대 누구나 좋아 할 만한 길이 아니기에 그리 많은 사람이 같이 가지 않겠지만 더더욱 그 길을 가는 이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재산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작은 공감, 민감하게 같이 손모아 주는 이들의 기도, 여기서만은 말할 수 있다는 신뢰와 무엇이든 기꺼이 들어줄 수 있는 열린 마음. 이것이 교회됨의 핵심이요 힘입니다.
부흥의 결과 세상의 회복과 변화는 우리 손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이루어 내라고 우리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교회다움을 지키고 더욱 사랑함으로 사랑을 흘러가게 하도록 부름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우리의 묵상이 이것을 다시 기억하고 힘내는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사랑방 > 주일설교 20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마태복음 21장 8-9, 15)사순절 6 (0) | 2022.06.19 |
---|---|
누구나 집을 짓습니다.(마태복음 7장 24-29절) / 사순절 5 (0) | 2022.06.19 |
예수를 따른다는 것의 무게 (누가복음 7장) / 사순절 3 (0) | 2022.06.19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태복음 16장) / 사순절 2 (0) | 2022.06.19 |
나는 스스로 있는자 (출애굽기 3장 14절) / 사순절 1 (0) | 2022.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