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진을 찍는
내가 주인이라 생각한다
내가 찍을 것들과 풍경을 결정하고
타이밍을 정하고 구도를 잡고 내가 찍기 때문이다.
주인으로 사진을 찍을 풍경을 결정하면서
하나씩 배우는 것은 저기 있는
꽃, 풀, 나무, 해, 구름, 하늘 모두를 내가 찍는게
아니라 그들이 나를 부르고 나에게 마음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내가 주인일 수 없고
나는 그저 나에게 맘을 열어 말 걸어 오는
소리와 초청들에 그저 반응을 하는 하인일지도 모른다
주인이 아니고 하인이라는 생각은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어떤 초청에 응할지를
듣고 반응하는 일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친다.
세심하지 못하고 초짜에 폼만 잡으며
주인입네 하는 이의 귀와 눈에는 멋지고 크고 찐한 것들만 담긴다
하지만 멈춰서여 보이고
조용히 들어야 들린다는 것을 조금은 눈치챈
쪼금은 지혜로운 하인은 작은 것, 철지난 것, 모퉁이, 구석으로 가기 시작한다
오늘도 아침 라이드 아빠 노릇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차를 세우고 또다른 멋진 초청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한 해 동안 펜데믹이 준 작은 선물로 얻은 지혜의 덕이리라
봄이 벌써 도망간지 오래
숨을 헐떡 거리며 마스크를 벗었는데도 땀을 비오듯 흘리게
만든 심술쟁이 햇님이 이글대는 한낮 땡볓의 시간에
여전히 봄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왕자 공주님의 왕궁이
바쁜 걸음 운전사의 발목을 잡아 멈추게 했다.
한걸음을 옮기면 또다른 나라 왕자와 공주가
여기를 찍으면 또 다른 색깔 옷을 입고
이미 철지난 봄을 여전히 지켜보려고 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 어쩌면 봄 안에 여름도 겨울도 가을도 있고
무섭게 찌는 여름 안에도 겨울, 가을, 봄이 있음을
알고 사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의 복이겠지
한해 동안 수도 없이
소리를 듣고 열심히 풍경을 담았으면서도
이제야 겨우 주인의 음성이 들리는구나.
하지만 그게 어디냐. 그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