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로 화목한 것이 정말 소중한가?라는 질문으로 아침 식탁을 차려 주십니다. 특별히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효율이나 목적보다 관계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가?를 되짚어 보라고 도전합니다. 이것 역시 정답이니 당연해라고 치워버릴 문제가 아니라 실제 나의 삶에서 자주 잊게 되는 것일 수 있고 의식, 무의식 중에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이기에 잘 씹어서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화목이라는 밥상에는 어떤 특별한 요리가 올라있을까요? 그 첫번째는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는 요리입니다. 손자, 노인, 아비, 자식으로 대표되는 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에게 기쁨이요 영광이 되고 있습니다. 손자는 노인에게 아비는 자식에게 그렇습니다. 기쁨이요 영광이 된다는 것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말이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화목하다는 것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 존중과 사랑 그리고 깊은 상호 연관성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손자를 보면 노인을 알 수 있고 그 아비의 그 자식인 것이지요. 그러니까 화목하라는 말을 정답으로 받지 않고 곰곰히 씹어먹을 때 우리는 같이 더불어 사는 이들과 깊은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기억해야 하고 정말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돌아 보게 될 것입니다.
두번째 요리는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입니다. 첫번 요리가 근본을 돌아보라는 밥과 국이라면 두번째 요리는 맛나고 눈에 띄는 멋진 찌게나 일품요리에 가깝습니다. 상호 연관성을 깊게 이해하고 존중속에서 사랑해야 한다면 구체적으로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한다 말합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매번 용서하고 허용하기만 하라는 말인가? 질문이 떠오르는데 이어지는 말을 씹어 보며 매운맛, 짠 맛이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것과 대조되는 자리에 ‘허물을 거듭 말하는’이 놓입니다. 이 두 대조는 화목을 좇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태도와 동기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덮어주는 것의 반대에 거듭 말하는 이 있다면 사랑을 구하는의 반대에는 이간하는이 있음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떤 동기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가 보이시지요. 때로는 덮어주기 위해 아픔을 넘어야 하고 용기를 내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사람은 나와 깊게 연관되어있고 존중과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초가 없는 이에게 다른 이의 허물은 그저 비웃음의 대상이거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좋은 기회를 얻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에 그것은 집요하게 반복되어질 뿐 입니다.
한가지 식사 후 디저트가 제공되는데요. 그것은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 입니다. 화목은 가까운 이들에게서만이 아니라 낮설고 어려운 이들에게 까지 확장되어 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디져트도 맛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오늘 ‘화목’이라는 식탁위에 차려진 음식들이 어떠셨나요? 다시 한번 강조드리지만 이것은 여러분을 위해 차려진 선물 같은 것입니다. 부담과 짐 혹은 죄책감으로 드시지 마시고 상을 차려주신 그 분의 마음을 기쁘게 받아 꼭꼭 씹어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락방(묵상 모음방) > 잠언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짧은 묵상 27-1. 잠언 17장 15-28 (0) | 2021.06.02 |
---|---|
짧은 묵상 27-0 잠언 17장 15-28 (0) | 2021.06.02 |
짧은 묵상 25-2. 잠언 16장 16-33절 (0) | 2021.06.01 |
짧은 묵상 25-1. 잠언 16장 16-33절 (0) | 2021.06.01 |
짧은 묵상 24. 잠언 15:19-33 (0) | 2021.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