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이어지는 아비와 음녀의 대조는 우리를 스르르 “음 그래, 또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면 음녀의 유혹에서 망하지 않을 수 있어” 라는 결론을 떠올리게 해서 더이상 성경을 읽거나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주님 회개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품겠습니다. 망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적용의 기도로 오늘의 큐티를 마무리하게 합니다. 하지만 늘 말씀드린 듯이 그렇게 끝을 내기에 오늘 본문은 좀더 반짝반짝 위트도 있고 생각할 거리가 있습니다. 힘을내서 천천히 걸어보시고 천천히 글을 씹어 보십시오. 고기와 글은 열심히 씹어야 제맛입니다. ㅎㅎㅎ
그럼 여러분들의 씹는 여정의 소식을 기대하며 오늘 제가 느꼈던 맛 두가지를 같이 나눠보겠습니다. 첫번째는 ‘지키면' 그것이 ‘지키리라' 라는 표현입니다. 아비는 아들에게 말, 명령, 법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말,명령,법이 너를 ‘지켜' 음녀, 이방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용적으로 보면 ‘친밀성이 너를 보호하리라’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것을 ‘지키면 지킨다'에 담아 놓으니 눈과 마음에 강하게 들어 옵니다. 우리가 너무 섣불리 가볍게 바꾸어 버린 축복이란 것 역시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나를 지켜주기 때문에 나의 삶과 몸에 깊게 새겨서 지켜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의 삶과 몸에 가까이 두고 새길때 내 삶의 방향과 유혹 그리고 실수나 실패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것이기에 축복인 것입니다.
두번째는 거의 마지막 부분에 어리석은 자가 ‘저물때, 황혼때, 깊은 밤, 흑암 중' 에 음녀의 집으로 들어간다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요즘처럼 밤이 낮같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닌 등불이 귀한 고대에는 밤과 낮의 대조가 훨씬 와닿았을 듯 합니다. 그런면에서 물리적인 의미의 밤이 무얼까?를 상상하다가 ‘공동체의 투명성'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대학시절 제가 소속했던 공동체에 내려오던 전설적(?)인 이야기중 하나 “공동체 지체들간의 투명성 때문에 자신 속에 감춰두었던 죄를 서로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사적인 죄에 대한 공적 고백의 위험성도 이제는 같이 생각할만큼 세월이 흐르고 성숙한 면이 있지만 여전히 찐한 공동체성에 기초한 투명성(죄에 대한 민감성)을 가질 수 있었던 당시의 모습이 제법 그리운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슷한 감정을 10여년전 방문했던 브르더호프라는 공동체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었지요. 저는 요즘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소수자 인권이나, 여성문제, 성폭력이나 성파별 반대의 흐름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해봅니다. 종교적이고 한정적인 공동체 안에서의 투명성이 멋진 것처럼 공적인 사회에서 말과 행동을 이제는 투명하고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사회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사회가 아니라 지금보다 매력적인 사회임이 분명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사적이고 종교적인 부분에서 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공동체성을 기초로 하는 투명성을 가지는 멋진 곳에 사는멋진 일이 좀 더 자연스러운 그런 곳이 되길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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