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크릴로 풍경화를 그리는 법을 배웠다.
스케치와 목탄과는 달리 아크릴화에서 나를 계속 괴롭혔던 색깔 고르기와 만들기를 오늘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보스턴 컴먼의 배경으로 펼쳐진 빌딩 숲의 빌딩 하나하나는 비슷하지만 각기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는데 눈에 보이는 색의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색을 골라야 하는지 그 색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오늘도 난감한 시간을 보내며 늘 그렇듯이 그냥 선생님의 도움만 애처롭게 구하다가 시간만 죽이고 있었던 순간. 갑자기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는 만용(?)으로 그냥 파렛트 위의 색을 마구 섞어버렸다. 휴대폰 속 사진이 보여주는 색과는 전혀 다르지만 이왕 엎질러진 물 용기를 내서 캔버스에 과감히 붓질을 감행했다.
"음. 아주 엉망은 아니네 휴!"
하지만 아직 그려야 할 그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렇게 겨우 수습아닌 수습을 하고 겨우 숨을 돌리고 있는 나에게 이어지는 또하나의 넘어야 할 큰 산은 선생님의 다음 말로 나를 덮쳐왔다.
"물 위의 정자가 빛 때문에 각각 색이 다르네요"
예 말씀은 맞는데 그래서 그걸 어찌해야 하남요 ㅠㅠㅠ 또 다시 얼음의 시간.
하지만 감사하게도 좋은(?) 선생님은 위기의 제자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과감한 붓질로 구원의 손길을 베푸셨다. 화면 속 사진과는 전혀 다른 색이 확 나의 정자의 오른쪽 기둥에 명암을 만들었다. 선생님의 구원의 손길에 겨우 기대어 겨우겨우 일단 간단한 스케치를 지나 전체적인 초벌 색 입히기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그렇게 비틀비틀 2시간의 시간을 넘어 보스턴 컴먼의 풍경은 내 눈-머리-몸을 통해 내 풍경으로 지금 눈 앞에 있다. 오늘 2시간 동안 내가 그린 그림을 들여다 보는 시간. 놀랍게도 작업을 마치고 바라다 본 내 그림은 분명 사진 속 그 풍경과는 다르지만 제법 그 자체로 내 마음 속 또 다른 나의 보스턴 풍경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내가 본 것을 그대로 옮겨 준다. 그래서 구도와 타이밍만 놓치지 않으면 기특하게도 대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모습을 담아 준다. (물론 내가 담고 싶지만 타이밍을 놓치거나 나의 스마트한(?) 비서가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것들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새롭게 배우고 있는 그림그리기는 여러가지로 다르다. 내가 보는 것과 내가 그려 낼 수 있는 것과 결국 그려내는 것은 절대 같을 수 없고 같지 않다. 하지만 같지 않다고 해서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지 못하면 절대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보이는 것과 다르지만 내가 지금 그릴 수 있고 그려내는 색과 그림은 또 다른 나의 세상이고 풍경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릴 풍경과 세상은 그렇게 나의 눈-머리-손을 통과해서 나의 빌딩이 되고 내 숲이 되고 나 만의 풍경이 된다.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아내는 이것을 '재해석'이라는 말로 다시 설명했다. 그림 만이 아니라 음악도 마찬가지라고. 분명히 악보가 있지만 연주자는 자신 만의 재해석을 통해 자기 곡으로 만들어 내어 다른 이들 앞에 들려 준다는 것이다. 곰곰히 듣다가 직업병이 도져서 그럼 목사의 설교는? 하고 잠시 생각을 해본다. 모든 이에게 객관적으로 놓여진 성경이라는 악보를 설교자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오늘 여기에서 또 설교로 드러낸다. 성경의 색과 모양 그대로를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고 우리가 결국 해내는 또 다른 성경의 이야기와 그림을 그리고 부른다. 내가 오늘 그리고, 부르는 노래와 풍경은 절대 성경 속 그것과 같을 수 없음을 기억해야만 설교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좋은 그림, 노래, 설교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성경의 색깔과 소리들을 똑같이 재현했느냐 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나의 삶과 몸을 통과해 얼마나 나의 이야기, 노래, 풍경으로 지금 여기에 나타났는가 아닐까? 그래서 좋은 눈도, 능숙한 손재주도 중요하고 필요하겠지만 내 소리와 내 색을 용기있게 뱉어내고 쓱쓱 그려내는 것이 훨씬 중요할 것 같다. 분명히 풍경과 사진과는 다른 색과 소리가 튀어 나올 때 처음에는 실패라 생각하고 움츠려 들어 얼음의 시간이 닥쳐오기도 하고 다시 선생님의 도움의 손길을 바랄 수 밖에 없는 두려움의 시간 앞에 자주 서게 되겠지만. 그런 실패와 두려움을 반복하며 결국 내 소리와 색깔을 찾아가고 그렇게 내 그림을 그리며 내 노래를 부르게 되는 때가 오겠지. 나는 스마트하지도 멋진 손맵씨도 갖지 못했지만 오늘도 두려움 없이 내 색을 찾아가는 화가로 내 그림을 그려가는 중이다. 몇 주 후 최용하의 보스턴 컴먼 풍경을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용기를 내서 색을 고르고 만들고 그린다. 나는 그렇게 화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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