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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주일 설교 2021

2021 사순절 셋째주 설교

 화해의 길 (고린도 후서 5장 17-20)

저희는 사순절 세 번째 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저희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망가져서 우리의 삶에 발생한 여러가지 아픈 모습들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회복되는 일에 작은 실천을 하자! 라고 다짐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바울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지난 한 주 묵상했던 내용들을 ‘화해'라는 단어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진정한 화해는 무엇이고 어떻게 시작되며 우리는 그 사랑의 물결안에서 어떤 가닥을 잡고 살아가야 할까?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작은 실마리를 얻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화해 : 사랑의 이어달리기
오늘 바울은 자신이 왜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삶을 던졌는지를 설명합니다. 그 출발에는 자신을 위해 몸을 던졌던 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몸을 던져 준 그 분 때문에 자신에게 발생한 일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서의 삶을 기쁘게 생각하려면 이제까지의 삶에 대한 불만이나 답답함 한계 같은 것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것이 부정적이던 혹은 긍정적이던 누군가의 사랑과 헌신에 닿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하여 아들 예수님과 바울 고린도 교인들을 거쳐 또 다른 이들에게 사랑으로 흘러 이어져 갑니다. 사랑을 위해 몸을 던진 이를 통해 사랑받은 이가 또 다른 이를 위해 몸과 마음을 던지는 일. 그것을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 ‘화해'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너무나 사적이면서 공적인 일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이 흐르는 일을 개인이 느끼는 애틋한 감정이나 뜨겁게 불타오르는 화끈한 애정 편력을 넘어 화해와 연결시키면 그것은 더이상 개인적인 일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화해는 우리가 지난 한 주 묵상했던 원래 창조의 모습을 가장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관계의 충만함'의 마구 깨어짐이 다시 회복되어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 다시 그 받은 사랑을 흘려내리는 일은 개인적일 뿐 아니라 이미 공적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바울이 말하는 내용을 신앙을 갖는 다는 말로 바꾸어 생각해 보면 신앙을 가지는 일은 너무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일일 뿐 아니라 너무나 공적이고 보편적인 일이어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들은 누군가 혹은 어떤 일에 의해 그 사랑을 아주 사적이고 은밀하게 맛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큰가, 작은가, 찐한가, 밍밍한가는 중요치 않지만 그 사랑을 통해 무언가 새롭게 되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면 이 화해의 이어달리기에 참여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본 모든 이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그 사랑이 또 다른 이를 향하여 내가 사는 세상의 진정한 화해를 향하여 흘러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신이 됨"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사신의 중요한 과제는 “화해를 이룸" 입니다. 

사랑은 절대 개념이나 말로 흘러갈 수 없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했기에 자기를 던졌고 사랑하는 이를 그저 멀리서 두고 볼 수 없었기에 엉망진창인 그들의 삶에 뛰어들어 개입하며 온갖 스캔들을 만들고 소란을 일으킵니다. 그것은 바울에게 이 사랑을 전했던 예수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의 사랑은 말이나 멀찍이 서서 심판이나 해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처절한 일상으로 내려 오는 것이었고 그런 선택으로 심각한 오해와 배신과 아픔과 외로움을 짊어진 행동이었습니다. 하나 더 올라가면 아버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그분은 우아하게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보다는 여기 깨지고 무너져 내리는 세상을 향해 몸을 던지신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온갖 위험과 오해와 수고를 하면서 세상을 같이 호흡하고 때로는 공감하고 아파하고 그것이 넘쳐 실수하고 미끄러지면서도 이웃을, 세상을 들여다 보고 껴안고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미얀마, 변희수, 윤여정
지난 한 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제게 아프게 말을 걸었던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 생명을 버려야 했고, 또 다른 저 멀리 사람들은 옳지 않음을 알리려고 생명을 던져야 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쉽지 않은 시간을 길게 버티고 버텨 말에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생명을 끊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아프고 힘들고 외로운 상태는 어떤 것일까요?  생명을 걸고 저항해야 할 만큼 안타깝고 중요한 것은 또 무엇일까요? 아프고 힘들고 그만 포기하고 싶은데도 꾸역꾸여 일하고 살아 남아야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표면적으로는 정반대의 자리에 놓여있는 이 세 종류의 사람들이 묘하게 공통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나의 결정과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붙잡고 결정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생명을 버리는 일도, 생명을 걸고 자신의 몸을 던지는 일도, 그 생명 때문에 꾸역꾸역 버티고 살아내는 일도 ‘생명' 그것이 가지는 무게와 의미 때문에 발생하고 그것이 어떤 선택이든지 존중받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시 서로 화해하는 것 그것은 이런 선택들이 존중받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소리기에 그것을 들리게 하려고 악을 쓰고 몸을 던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 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예 우리가 사는 세상 가운데 아직도 소리를 내지만 들리지 않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여러가지 커다란 구호에 묻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기가 우리의 사랑이 더 많이 흘러 가야 하는 곳입니다. 마지막으로 노래 가사 하나 옮기면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푸른하늘이라는 그룹의 내일로 가는 길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번 한 주 하늘 은총 가운데서 여러분들 눈과 손에 닿지 않았던 그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축복을 아주 조금이라도 경험하는 한 주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넌 알고 있었니 세상 그늘진 곳의 아픔을
가슴도 메말라 고독 마저 생각지 못하는
밝게만 느껴 지던 세상 한구석에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사람이 있는걸
내일로 가는 길 사랑으로 칠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밤과 낮을
다르게 느끼지 않을텐데
내가 가진것을 조금씩 나눠 줄 수 있다면
메마른 눈빛과 마음 대신에
따듯한 눈물이 넘쳐 흐를텐데

난 이제 알았지 초라한 곳의 주름진 모습
바쁘게 살지만 즐거운 생각 하지 못하는
밝게만 느껴지던 세상 한 구석에는
웃음마저 잊은 채 사는 사람이 있는걸
내일로 가는 길 사랑으로 칠 할 수 있다면
이세상엔 밤과 낮을 다르게 느끼지 않을텐데
내가 가진 것을 조금 씩 나눠 줄 수 있다면
메마른 눈빛과 마음 대신에
따듯한 눈물이 넘쳐 흐를텐데

내가 있는 방보다 작은
공간속에서 좁은 줄도 모른 채
잠든 아이들 모습 내일로 가는 길
사랑으로 칠 할 수 있다면
이세상엔 밤과 낮을 다르게 느끼지 않을텐데
내가 가진것을 조금씩 나눠 줄 수 있다면
메마른 눈빛과 마음 대신에
따듯한 눈물이 넘쳐 흐를텐데

내일로 가는 길 사랑으로 칠 할 수 있다면
이세상엔 밤과 낮을 다르게 느끼지 않을텐데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눠 줄 수 있다면
메마른 눈빛과 마음 대신에
따듯한 눈물이 넘쳐 흐를텐데


www.youtube.com/watch?v=Z5mNeD08XJo&t=139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