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필요할까? (사무엘상 22장)
우리는 사울이기도 하며 다윗이기도 하고 요나단이기도 하며 아굴람에 찾아온 사람들이기도 하고 도엑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는 이런 모든 이들이 숨어있고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너무 자주 변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성경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읽는다는 것은 무언가 선악과 정답을 찾아서 실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가 아니라 성경이 지금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무엇인지 귀를 귀울이는 마음으로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들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을 같이 읽고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없고 약하고 볼품없는 이들은 서로를 향한 기댐이 있다
사울은 이미 왕이고 다윗의 위치나 상황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그의 아들이고 다윗은 그의 신하입니다. 하지만 그의 신하인 다윗은 그의 충성과 열심 때문에 사울의 눈밖에 낳고 사울은 그를 경계하여 결국 다윗은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사울을 떠나 쫓기던 다윗이 머물게된 아둘람 다윗의 근처에 모인 사람들에 대해 오늘 성경은 다음가 같이 소개합니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환난 당한 모든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실패한 본 사람이 실패를 당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발견합니다. 다윗을 통해 보여지는 첫번째 역설은 우리의 실패가 친구를 가져다 준다 입니다.
무언가 지켜야 할 사람은 곁을 주기가 어렵다
반면에 사울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 모든 것을 가진 성공과 자리가 모든 이를 의심하고 잃어버리게 합니다. 사울의 말을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결국 사울은 자기가 다다른 자리(사실은 전체적으로 성경의 이야기는 그것이 그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은혜로 얻어진 것임을 중요하게 반복해서 보여줍니다)가 그로 하여금 어떤 방법을 쓰던지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결국 주변 사람들을 멀리하고 그들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다윗이 자기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다윗은 자기에게 밀려온 사람들을 위해 자기의 원수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결정과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왔기에 사울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 이들을 보면서 그 일이 자신의 책임인 것과 자신이 최선을 다해 책임질 것을 선언합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신뢰하여 다가온 이들을 위해 때로는 자신이 하기 싫은 일. 할 필요 없는 일. 자기의 신념과 자존심을 내려 놓는 일을 할 수 있는가 적극적으로는 그들을 사랑하기에 내가 가진 것을 다 던져서라도 그들을 위해 설 수 있는가? 오늘 다윗이 두번째로 보여주는 모습은 이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구체적인 몸을 던지는 행동이며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소리를 들으시나요?
성경은 누가 옳은가? 누가 틀렸나를 말하지 않고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래 너는 지금 어디있고 나는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라고 말합니다. 오늘 이야기 속에서 여러분들은 어디쯤에 서 계시나요? 여러분들에게 들려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만약 여러분들이 사울의 자리에 계신다면 여러분들이 서있는 자리 여러분들이 획득한 성취가 여러분들 자신과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이들을 삼키지 않을 수 있도록 늘 깨어있으라고 호통치시는 소리를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도구일 뿐임을 늘 기억하십시오.
만약 여러분들의 자리가 다윗처럼 무언가 실패와 도망과 답답함으로 둘러쌓인 어둠의 시간이라면 오히려 그 시간이 주는 특별한 관계와 축복을 살펴 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그 어둠의 시간이 걷히고 햇빛이 비추기만을 막연히 기다리기 보다는 나의 실패와 절망으로 상처로 동일한 경험을 하여 낙심한 이들의 벗이 되고 울타리가 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실패했기에 넘어졌기에 암담하기에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으시면 좋겠고 손잡을 수 없었던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감히 다가올 수 없었던 당신에게 기대는 이들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일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경험하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다른 차원의 사랑을 이미 맛보셨다면 당신의 바뀐 눈에 밟히고 귀에 들리는 무언가 손을 뻗어 주기를 기댈 언덕을 구하는 이들을 사랑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말로만이 아니라 작지만 단단하 연대의 손길을 강렬하지 않아도 따뜻한 공감의 눈길을 분주함을 멈추고 작은 신음 소리와 수다에 귀기울여 주는 여유가 주는 멋과 맛과 빛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여전히 세상은 아니 우리 속에서도 그건 별게 아니야라고 계속 외치겠지만 그런 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그렇게 구원을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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