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502. 주일 설교
출발. 과정. 끝(출애굽기 14:13-14, 18, 31)
믿음의 출발 / 약속
믿음의 출발은 하나님께서 먼저 당신의 약속을 말씀하심으로 시작이 됩니다.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 모세 그리고 우리들 역시 우리의 일상적인 삶 가운데 어떤 변화나 가능성을 꿈꿀 수 없는 상황 가운데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일상 속 우리에게 어느날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이 문득 주어집니다. 약속이 주어지기 전에도 그들은 숨쉬고 일하고 어쩌면 희노애락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대치 않았던 약속 때문에 너무나 당연히 하루하루를 살던 시간과는 다른 기대와 변화를 꿈꿀 수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 와는 다른 시각으로 자신들의 삶과 일상을 그리고 세상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변화를 가능하게 한 ‘하나님의 약속’ 그것을 우리는 ‘은혜'라 말합니다.
약속과 성취 사이 : 하나님의 개입
약속은 주어지자 마자 성취되어지지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약속 때문에 새로운 시각도 생기고 삶과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도 발생하기에 약속은 우리를 들뜨게 만들고 살아갈 새로운 용기와 의미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삶의 동기가 생기고 기대와 꿈이 생겨서, 우리가 흥분했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당장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약속이 생겼기에 변화를 갈망하고 추구하는 우리의 삶에는 기존에 있었던 안정감들과의 마찰과 갈등이 발생하고 그에 따르는 불편함과 어려움이 더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약속'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약속의 완전한 성취에 도달하기까지 중간중간 그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실 분이 구체적으로 자신이 누구신지를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여주시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모세에게는 불타는 가시덤불 앞에서 기적과 답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10가지 재앙과 결국 출애굽을 하도록 하심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약속은 분명히 우리의 삶의 중요한 출발이지만 그 출발은 구체적인 작은 성취들을 통해 약속을 하신 분에 대한 믿음의 쌓임으로 튼튼해져 갑니다. 믿음은 그냥 나의 바램을 스스로 확증하는 정신승리가 아닙니다. 또한 어느날 하늘로부터 뚝떨어진 도깨비 방망이나 지니의 요술램프여서 누구나 그 하늘의 대박인 행운을 단번에 얻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출애굽기 속 믿음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 가운데서 직접 개입하심으로 자신이 누구신지를 보여주시는 것에 기초하여 계속 조금씩 우리 안에 쌓여져 가는 것입니다.
항의와 응답
자 이런 기초적인 전제를 가지고 오늘 이야기를 잠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놓인 상황을 설명한 후에 그들이 모세에게 어떻게 강력한 항의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항의에 대해 모세와 하나님은 어떻게 대응하고 계신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금 강력한 항의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상황은 어떠한가요? 긴긴 재앙과 저항의 밀당 끝에 마침내 출애굽을 하게 된 이스라엘 앞은 거센 파도와 깊은 바다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는 애굽 각지에서 차출된 정예병사들의 마병과 수레가 굉음을 내며 달려오고 있습니다. 잠시 맛본 작은 승리의 짜릿함을 충분히 맛보기도 전에 진퇴양난의 순간 앞에 툭 던져진 그들의 반응이 강력한 항의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 모릅니다.
이에 반응하는 모세의 모습 역시 겉으로는 약속을 붙잡고 멋진 말을 나열하고 있지만 그 역시 어찌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있습니다.
하나님의 대응은 또 어떠한가요? 홍해를 가르고 뻘밭이 아닌 굳은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게 하고 애굽의 모든 병거들을 다시 그 물 속에 덮어 버리는 일은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은 오늘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가 보여주는 모습에 가까울 듯 합니다. 어느날 우리의 삶 가운데 은혜라는 약속으로 찾아 오신 하나님 때문에 무언가 그 렌즈로 세상을 보고 그 약속 때문에 소망도 삶을 사는 이유도 생기게 된 이들을 하나님의 백성. 성도, 제자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믿음'으로 감당해 냅니다. 이들의 믿음은 약속을 하신 그분께서 이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신 증거를 통해 조금씩 깊어지고 쌓이고 넓어집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개입은 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마치 그 분이 계시지 않는 듯한 시간들 사이에 완전히 죽지만 않을 정도로 발생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우리가 납득되고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일보다는 억울하고 무겁고 받아들일 수 없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다라고 생각되는 시간이 훨씬 많은 그런 삶을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지나야 하는 걸까요?
저의 눈과 손에 잡힌 작은 실마리인 모세의 말을 먼저 들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백성에 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 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 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얼핏 보기에 모세의 이 말은 대단한 신앙을 가진 지도자의 확신에 찬 선언처럼 보이지만 이어지는 장면 속 모세는 그런 확신의 모습과는 달리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부르짖지 말고 백성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내밀어 바다를 갈라지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되었을때 더 이상 기도하거나 그 하나님을 기대지 말고 그냥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믿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회퍼라는 목사님은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로 정리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시간 가운데 놓입니다. 그런 시간을 지날때 많은 이들이 불안하고 두렵고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매어달리고 하나님이 계시는 확신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들어 자기들 앞에 세우는 잘못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오늘 홍해와 애굽의 군사들에 둘러싸여 어찌할바를 모르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나를 찾지 말고 나없이 내 앞에서 담대히 행하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의 감정, 지식,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시는 것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쌓인 하나님의 모습이 하나님의 전체가 아님 또한 기억하십시오. 약속으로 부름 받았고 지난 시간 속에 그 약속을 하신 분을 만났다면 이제는 그 분이 계심을 믿고 이전만큼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불투명하며 답답하여도 마치 그분이 없어도 된다는 마음으로 그 분 앞에서 담대하게 행하십시오. 그것이 여전히 갈라지지 않은 홍해 앞에서 믿음으로 덤덤히 가던 길을 갈 수 있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