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럼에도 (시편 78편 54-58절)
그러나, 그럼에도 (시편 78편 54-58절)
오늘 시인은 애굽에서부터 광야와 가나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푸셨는지 얼마나 꾸준히 참으셨는지를 조목조목 소개합니다. 그리고는 그 반대편에 고스란이 ‘그러나'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배반과 시험과 불평과 의심을 가득품은 채 죄를 이어간 모습을 역시 마찬가지로 꼼꼼히 고발합니다.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하나님의 얼르고 달래심에 대하여 다시 설명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시편을 들으면서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이스라엘은 왜 그러는걸까요? 하나님에게는 이렇게 참으시고 약간은 무력하게 기다리시는 방법외에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걸까요? 오늘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해 보길 원하는 출발점입니다.
이번 한 주 우리에게 가장 크고 자주 들려온 소식은 우크라이나에서 결국 아프게도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입니다. 코로나 펜데믹과는 또 다른 아픔과 고통의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전해집니다. 그 아픔의 소식 사이사이로 여러가지 진단과 해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또한 들려 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이것은 애굽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열가지 재앙은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사건이었고 애굽에게는 심판의 사건이었습니다. 홍해를 건너는 일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건을 돌아보면서 오늘 시인은 그것이 애굽만의 죄이거나 잘못으로 노래하지 않고 이스라엘 역시 그런 잘못을 범할 수 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애굽이서가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니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이런 배신과 불신앙 불순종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를 물어야 합니다. 조금만 시인의 노래를 따라가 봅시다. 시인이 이스라엘의 문제있는 태도를 나열한 내용들을 모아 정리해 보면 약간의 변주가 있지만 공통적인 부분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불신앙’이라고 시인은 노래하는데 그렇게 신앙을 잃어버리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들의 눈귀마음과몸이 당장 자기 앞에 들리고보이고만져지고느껴지는 것에 고정되고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어 한발자욱도 그 이상으로,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쉽게 흔들리고 좁아질 수 밖에 없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끝나기를 기도하고 외칩니다. 푸틴의 잘못을 말하고 약간의 혼란이 있지만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그 나라의 정치제도의 문제를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시시비비를 판단하고 해법을 외칩니다. 그런데 정작 그런 옳음의 외침이 자기의 이익과 부딪치는 지점에 이르면 그 소리는 힘을 잃거나 작아집니다. 먼 남의 이야기에 말을 보태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 안의 구체적인 이익과 연결된 일에서 옳음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견뎌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런 선택을 어리석다 말하고 너무 이상적이라 말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가요? 그런 세상의 흐름과 우리들 안의 이기적 본성은 우리로 하여금 한발자욱도 지금 여기를 넘어서거나 깊어지지 않도록 꽁꽁 묶어 버립니다.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은 그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며 행동하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고민과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이 지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은 여러분들을 하나님이 전폭적으로 신뢰한다 말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삶은 여러분들이 결정합니다. 운명이나 무언가를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위험하고 불안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여러분들을 향한 인격적 신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렇기에 이제 여러분들의 삶은 여러분들의 선택에 고스란이 놓입니다. 삶의 파도는 여러분의 삶 곳곳에 그리고 끝날때까지 있을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은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입니다. 우리들 하나하나는 충분히 이기적인 사람들입니다. 언제 누가 누구의 적이될지 친구가 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더욱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나의 행복을 위한 바른 선택을 위해서 오늘도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또한 우리 앞에 놓인 예측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삶의 파도와 불합리를 넘기위해 우리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그 파도가운데서도 무너져 포기하지 않기 위해 그 혼란속에서도 더불어 힘내어 행복의 나라를 일구어 가기 위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기도와 묵상은 또다른 행운이나 신비한 비밀을 깨닫는 요술방망이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와 묵상은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더욱 사랑하시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백성으로 살기위한 우리의 최소한의 몸부림이요 간절한 절규입니다.
오늘 말씀 나눔을 마무리하면서 이번 주에 보게된 서른 아홉이라는 드라마 이야기를 잡시 나누겠습니다. 드라마 속 세 명의 친구 중 하나인 찬영(전미도 배우분)이가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자 그 친구인 미조(손예진 분)는 처음에 어떻게든 치료를 해서 상황을 이겨보려 애를 쓰다가 나머지 시간을 자기 친구가 ‘멋진 시한부의 삶'을 사는 일에 같이 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미조가 같이 있는다고 해서 찬영이가 낫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똑같은 투병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의 기도가 우크라이나의 상황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고 우리의 묵상이 대단한 복을 우리에게 주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런 기적이 생기지 않아도 그렇게 같이 서있어 주는 것 그것이 우정이고 사랑이고 우리를 우리되게 하는 가치요 힘입니다. 기도와 묵상은 그것을 계속해서 깨닫게 하는 자리이고 지탱하게 하는 힘이며 결국 포기하지 않고 빛나게 하는 빛입니다. 오늘 시인은 그 자리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멋진 사람됨의 자리로 같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