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주일 설교 2021

폭풍을 지날때 4. 마태복음 14장 22-33절

Ridedaddy 2021. 10. 24. 13:13

폭풍 속을 지나가는 일은 때로는 의도된 것일 수 있고 상황에  밀려서 발생하는 일일 수 도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먼저 보내시고 자기는 남아 뒷정리를 하고 기도하러 가심으로 그 일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정황은 예수님이  무리를 피해 산으로 가시는 동안 제자들이 스르르 배를 타고 예수님 없이 떠난 모양새를 갖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가운데 폭풍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오고 그것이 어떤 이유로 출발하던지와 상관없이 폭풍을 통과하는 우리들에게 ‘당황스러움’ 과 ‘두려움’을 제공합니다. 폭풍을 통과할때 대체적으로 물을 여유도 없지만 물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왜 그런일이 발생했는가? 입니다. 그 질문은 답이 없을 수도 있고 답을 찾는다 하여도 폭풍을 통과하는 우리에게 전혀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는 폭풍을 직면하지 않고 피해가려는 좋지 못한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일까요?

얼핏보면 제자들이 만난 문제는 폭풍우와 그로 인한 애씀인 것 처럼 보이지만 오늘 성경은 조금 다른 각도의 시야를 던집니다. 유사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다른 복음서는 예수님이 같이 타신 배가 가라앉게 되어 쩔쩔매고 애를 쓰는 제자들의 모습과 그에 반해 태연하게 주무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같이 묵상하는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제자들에게 닥친 ‘고난(어려움)’에 대한 묘사를 아주 짧고 건조하게 던집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그런 폭풍속에 등장하는 예수님을 대하는 제자들이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며 유령이라 여겼다’ 고 소개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정말 힘들게 하는 걸까요? 저는 병원에 있으면서 힘이 든것 보다는 불확실한 것이 우리를 무너지게 하고 포기하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눈 앞에서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고 밥을 드시지 못하셔서 약해져 있는 아빠의 모습도 힘이 들고 답답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흔들림과 도전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피가나는 일이 꼭 나쁜 것이 아닐 수 있으며 지금 당장 기침이 멎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 꼭 병이 낫는다는 증거일 수 없는 상황을 많이 겪게 됩니다. 나는 의사가 아니어서 그런다 하여도 의사들 역시 비슷한 어려움에 놓여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들도 잘 모르는게 너무 많습니다. 그저 수치와 경험에 근거하여 대처를 해나갈 뿐 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알리바이’를 만들며 살아갑니다. 내가 피해갈 수 있는 것. 내가 그나마 믿고 버틸 수 있는 것. 이것이 알리바이이지요. 그것이 때로는 과학이되기도 하고 상식이 되기도 하며 우리의 경험이나 현상들이 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이 소개하는 베드로의 돌발적인 행동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모두들 불확실성에서 당황해하는 그 순간에 다른 이들 보다 반발짝 빠르게 확실성을 발견하고 거기에 자신의 알리바이를 둡니다.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몇 발 못가서 베드로가 서있던 확실성은 주변의 불확실성에 포위되어 베드로를 침몰시키지요. 

 

믿음이 없는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많은 경우에 주님의 이 말씀은 믿음으로 우리의 눈을 상황이 아니라 예수님께 고정시켜야 한다. 는 말씀으로 읽혀왔습니다. 예 상당 부분 그런 면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대체할 수 있는 어떤 능력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능력치가 믿음이면 얼만큼의 능력치를 가지면 우리 삶에 놓인 불확실성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비슷한듯 보이는 다른 해법은 이것입니다. 최대의 능력치를 가지신 혹은 다른 말로 불확실성 속에서 절대 확실성을 가지신 그 분을 만나는 것, 혹은 경험하는 것, 그분의 사랑을 어떤 식으로든지 힘입는 것은 비틀대지만 엎드러지지 않는 닻 같은 것을 가지게 되는(의지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을 성경은 ‘믿음’ 이라고 말합니다. 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배짱(혹은 깡)을 갖게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이런 신비를 통과한 깡을 소유한 삶인 것이지요. 

 

우리 곁에 우리와 같이 계시는 하나님

마지막 강조하고 싶은 것이 하나 남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영웅이실 뿐 아니라 그저 우리 곁에 계시는 친구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아시지요. 연약함 수치 흔들림 유혹…. 그래서 그것을 공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베드로에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천천히 떠올려 보십시오. 그것은 질책이 아니라 안타까움입니다.  그 분이 살아내신 십자가의 삶과 죽음을 천천히 씹어 보십시오. 그 분은 힘 대신에 공감을 택하셨습니다. 낮아짐과 포기를 통해 같아짐의 공감을 끌어내셨습니다. 예 바로 이것입니다. 끝없는 불확실성의 폭풍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폭풍을 뛰어넘고 잔잔케 할 능력이기 보다는 그저 폭풍속에서도 우리와 같이 우리를 품고 버티시는 그런 공감의 친구입니다. 오늘 이런  친구로서 공감의 힘이 우리 모두를 버티게 하여 폭풍을 지나가게 만드는 열쇠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