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주일 설교 2021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사도행전 16장 7-10, 13-14, 18, 24, 28)

Ridedaddy 2021. 9. 5. 06:30

우리의 삶과 사역에서 우리는 다양한 통로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경험에 기초하여 결정을 내리고 행동에 옮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험하는 통로들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바울의 전도 여행중에서 아주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살피면서 바울의 하나님 경험을 통해 우리 삶에 비추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돌아봄이 여러분들의 일상 속 하나님 경험의 좋은 실마리가 되시길 바랍니다. 

전체적인 오늘 이야기

바울은 전도 여행의 원래 계획에 따라 비두니아로 가고가 하였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마게도내 사람의 ‘환상’을 보게됨으로 그것을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정하고 그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르게 된 첫 성 빌립보에서 루디아를 ‘만나게’ 되고 루디아가 말씀을 받아 들임으로 그 집에 유하게 됩니다. 거기 유하는 중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길에서 ‘만난’ 귀신들린 여종의 귀신을 ‘쫓아냄’으로 여종의 주인의 ‘무고’로 잡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찬송과 기도로 옥문을 열게되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기적 속에서도 감옥을 빠져 나오지 않고 거기 머물다가 이에 감복한 간수의 가족을 구원하게 됩니다. 다음 날 부랴부랴 달려온 이들에게 자신들이 로마인임을 밝히고 오히려 큰소리치며 감옥을 나오게 됩니다. 

예수의 영 / 환상 / 인정 / 만남 / 마음을 염 / 사건 / 무고당함 / 기적 / 의연 / 시민권

오늘 소개한 사건 가운데는 바울이 경험한 하나님 경험의 다양한 통로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초자연적인 것도 있고(환상,영의 반대, 감옥문이 흔들림)  우리 삶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상들도 있습니다(만남,귀신을 쫓아냄,무고당함, 시민권을 자랑함) 멋지고 확실하며 신나는 일도 있지만 반대로 억울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화가나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을 다모아 바울은 하나님을 경험하며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네 삶 가운데 우리는 보다 확실한 하나님 체험, 보다 분명한 인도를 구하며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분의 뜻을 깨닫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다양한 통로를 통해 다양한 모습과 내용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렇기에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좀더 열린 마음으로 내 삶의 여러 통로로 다가오시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귀를 기울이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음성 앞에 주저하지 말고 응답하여 그 음성을 나의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까요? 어떻게 즉각적인 응답을 하며 살 수 있을까요?  바울의 경험을 조금더 들여다 보면 좋겠습니다. 

초자연 / 일상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좀 더 확실하고 화끈하게 드러났으면 기대합니다. 하지만 오늘 바울의 경험속에서 보면 환상을 본 사건 말고는 초자연적인 통로가 아닌 일상적인 통로가 더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사실 자연적인가 초자연적인가 하는 구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헨리 나우웬의 이 말이 더 적절하다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주파수를 맞추지 못하여 듣지 못할 뿐이다” 그렇습니다. 특별하고 확실한 것을 찾기 이전에 우리의 호흡과 눈과 귀와 마음을 조금은 늦추고, 넓히고, 공을 들여야 합니다. 같은 꽃을 보면서 해를 보면서 아이들을 보면서 일상의 많은 일들을 해나가며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속에 이미 숨겨 놓으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힘을 기르는 일은 사실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으며 딱히 지금 당장 우리에게 어떤 유익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자리이고 모습입니다. 

좋은 일 / 억울한 일

어떤 경우에는 옥문이 열리고, 귀신이 나가며, 자기가 전하는 복음에 반응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귀신을 쫓아냈기에 무고를 당하고 매를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옥문이 열리는 기적속에서도 그들은 감옥을 벗어나는 선택을 하기 보다는 거기 머무르는 선택을 했고. 무고하게 맞고 옥에 갇혀서도 그들은 기도와 찬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네 삶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손길이 항상 우리의 기대와 입맛에 맞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대가 이루어졌을때 너무 흥분하지 않고 억울한 일을 당할때에 크게 숨한번 쉬고 버틸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망해야 할 믿음의 참 능력치입니다. 무수히 많은 간증거리와 기도의 응답을 자랑하거나 소망하기 보다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이가 되는 것. 

바울의 고백을 빌리자면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1-13절)  인 것입니다. 

작은 만남을 소중히 여김

바울은 길에서 만난 루디아를 그리고 귀신들려 점을 치는 여종을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이 열리는 기적속에서도 그의 마음과 눈이 ‘사람’에게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 매일 스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 허투루 하지 않는 마음과 자세를 갖는 일. 그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의 출발과 불씨가 일어납니다. 루디아, 여종,간수 덕분에 빌립보 교회의 시작이 가능했습니다. 매일매일 스쳐가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허투루 보지 마십시오. 그들의 마음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일에 시간과 마음과 정성을 떼어 놓으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복을 누리는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평소 습관이 중요.  

바울에게 일어난 일 중에 마지막으로 보여지는 특징은 그가 자기 앞에 주어진 여러 상황 속에서도 늘 자기가 하던 습관대로 행했다는 점입니다. 초자연적인일을 경험하는 순간에도 만남의 시간에도 억울한 순간에도 그는 늘 자기가 해오던 습관대로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길을 뚜벅뚜벅 가고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기도하며 말씀을 가르치고 불쌍히 여기며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의 말은 삶이고 남들에게는 특별한 것이 그에게는 그저 자연스럽게 몸에 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 몸에 밴 습관이 그의 힘입니다. 여러분들의 말과 생각을 몸에 붙이십시오. 그것을 다른이가 말로가 아니라 삶으로 보게 하십시오.